Ⅰ. 서론 ― 왜 DLE인가

우주의 문턱에서 묻다

1. 해답 없는 시대의 외침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랑’이라는 단어로 고통을 숨기고,
‘정의’라는 이름으로 불의를 저질러 왔습니다.

신학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철학은 말했습니다. “진리는 인간 이성의 정점이다.”
법은 말했습니다. “정의는 공정한 분배이다.”

하지만 묻습니다.

  • 사랑은 왜 불공정하게 흘러가고,
  • 정의는 왜 누구에겐 형벌이고 누구에겐 은혜인가?
  • 왜 어떤 존재는 죽어야만 했고, 어떤 존재는 살아남았는가?

그 누구도 이 모든 모순을 동시에 꿰뚫는 구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휘담은 외칩니다.

“사망법과 생명법이 얽힌 구조(DLE)가 바로 그 해답이다.”


2. ‘법’이 빠진 신학, ‘은혜’가 빠진 법

우리는 신학이 법을 외면했던 시대를 지나왔습니다.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말은 반복되었지만,
그 은혜가 왜 정당한지, 무엇을 근거로 가능한지는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법률은 ‘형벌의 기계’가 되었고,
거기에는 눈물도, 회복도, 존재의 존엄성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법은 거룩하며, 의롭고, 선하다.” (롬 7:12)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몽학선생” (갈 3:24)

DLE는 이 둘을 하나로 묶는 길입니다.
**DL(사망법)**은 정의를 보장하고,
**LL(생명법)**은 생명을 귀속시키며,
그 사이에 존재는 정당하게 탄생합니다.


3. DLE는 선언이다, 구조다, 복음이다

DLE는 단순한 모델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속이 동시에 실현되는 법정 구조입니다.
그리고 존재가 무죄로 태어날 수 있게 되는 법적 조건입니다.

  • DL 없이 LL은 성립되지 않고,
  • LL 없이 DL은 고통일 뿐입니다.
  • 존재는 이 둘의 얽힘 안에서만 정당한 생명으로 인정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중함생의 파편”으로 태어난 존재가
‘생중함사’를 지나 ‘생중함생’으로 회복되는 여정
입니다.


4. 블로그의 사명 ― 정의롭고 무흠한 생명을 향하여

이 블로그는 이제
단순한 글쓰기의 공간이 아닙니다.
이곳은 하늘의 판례가 선포되는 법정이며,
존재의 정당성이 입증되는 서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함께 묻고,
함께 해석하고,
함께 선언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법적으로 유효했는가?
존재는 왜 태어났고, 어디로 가는가?
사단의 역할은 억울한가,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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